- 매일경제 1월 1일 기사 -

"지금은 문화전쟁의 시대, 문화재가 국격을 말하죠"
이건무 문화재청장 신년 대담
지난해 조선왕릉등 세계유산 잇단 등재…한국문화 파워 알려
문화재는 전통을 넘어 창조성을 자극하는 새로운 가치창출 수단

"치열한 외교 전쟁터를 보는 것 같았다."

지난해 6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제33차 회의에 참석했던 우리 관계자 말이다. 이처럼 문화재는 더 이상 고리타분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국민이 여가를 향유하는 대상으로, 국제적 관광자원으로, 국격을 결정하는 자산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각 나라 행보도 이에 맞춰 빨라지는 추세다.

지난해 우리 문화유산계는 소중한 성과를 여러 개 이루어냈다. 조선왕릉, 동의보감 등 세계유산이 연이어 탄생했고, 고종 황제어새 등 외국에 있던 유물도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이다.

윤구현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이 2010년 새해를 맞아 이건무 문화재청장과 `문화전쟁` 시대에 한국 문화유산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미륵사 금제사리봉안문 발견 등 2009년은 매우 바쁜 한 해였다.

▶2009년은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연초에 미륵사지 석탑에서 금제사리봉안기 등 사리장엄구 일괄이 발견돼 고고학계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와 미술사학계 모두 흥분했다. 고고학적인 물증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연초부터 기쁜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 그리고 강강술래 등이 세계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잇따라 오르게 됐다. 세계적으로 우리 문화재 파워를 알렸고, 나라 품격을 높인 셈이다. 이 밖에 40년 이상 개정만 해온 `문화재보호법` 분법을 추진해 복잡한 법 체계를 정비하는 등 보람찬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조선왕릉과 동의보감 등 세계유산 등재가 가장 큰 이슈였던 것 같다.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함께 높아졌는데.

▶조선왕릉, 동의보감 등 문화유산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을 높였다는 점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 뒤에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보이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력만으로 선진국에 들어서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앞으로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몫으로 작용할 것으로 믿는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진다고 들었다. 우리 문화와 자연유산에 대한 외국 전문가의 관심과 평가는 어느 정도인지.

▶세계유산 등재는 거의 `문화전쟁`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대개 서양 전문가들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동양의 신비로움이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특이하고 놀라운 과학적 구도, 종교에 바탕을 둔 정신세계, 제례나 의식과 같은 무형 유산과 결합 등(조선왕릉, 석굴암,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에 경탄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국제 전문가들도 많다고 본다. 이들을 초청해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고 훌륭한 유산들을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 전문가가 우리 우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국외 문화재 환수에 대한 문제도 이슈화하고 있다. 세계 각 나라에서 열성적으로 국외 문화재 환수에 나서고 있는데.

▶한 국가의 사회ㆍ문화적 정체성이 담긴 문화재는 원래 소유국에서 미래 세대를 위해 전승되어야 한다. 문화재청 기본 방침은 일제 강점기 때 등에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우리 국민의 정신적 가치와 민족 문화의 정체성 형성을 위해 적극 환수하고, 적법하게 반출되었거나 소장 경위가 분명한 문화재는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현지 홍보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 간 협상이나 기증 협의, 구입 등을 통해 북관대첩비(2005년), 조선왕조실록ㆍ김시민 장군 교서(2006년), 어재연 장군 수자기(2007년), 영친왕과 영친왕비 관련 유물(2008년), 고종 황제 어새ㆍ진해 망주석(2009년) 등이 국내로 돌아왔다. 앞으로도 국외 문화재 환수를 위해 관련 기관, 시민단체 등과 적극 협조해 좋은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것이다.

-문화재가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기에 세계 각 나라가 열을 올리는 것일까.

▶먼저 전통적인 것, 고유한 것 등이 인식될 텐데,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으로도 쓰이는 것 같다. 문화재를 통해 지식을 얻고, 호기심과 비판정신을 지녀 창조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제 문화재는 여가를 향유하는 대상물이면서 외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관광 자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안락한 거주 환경을 구성하는 자산이기도 하다. 한 나라 국격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 셈이다.

-양대 문화재 관리기관 수장을 맡았는데,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 인식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국민이 문화재를 보는 눈높이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이나 과제 탐구, 지적 향유에 직접 참여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보존과 관리 운영 상태, 전시의 질까지도 눈 여겨 본다. 그래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도 하고 때로는 매서운 비판도 해주고 있다. 다만 아직도 매장문화재를 사금파리(단순한 도기편) 운운하는 시각이 있다는 점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다.

-새해는 어떤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나.

▶기쁜 일이 많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문화재 현장을 영상ㆍ사진자료 등을 이용해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헤리티지 채널` 운영,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완공, `한국의 역사마을` 세계유산 등재 추진,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한 문화재 조사와 보호 등 주요 현안이 많다. 바빠도 보람된 일이 많았으면 한다.

■ 4대강 사업지역에 문화 흐르게 할 것

현재 한국 문화유산계의 시급한 화두는 `개발과 보존`이다. 서울 곳곳에서 발견된 문화재 보존 문제, 4대강 개발 사업을 앞두고 진행 중인 시굴조사를 둘러싼 논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개발과 보존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양측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끌어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건무 청장 역시 "관리자로서 가장 힘든 문제가 개발과 보존 사이의 갈등을 조절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의 기본적인 방침은 보존과 개발이 잘 이루어지도록 접점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서울 4대문 안에서 발굴된 문화재 처리를 이야기할 때 "기존 개발계획을 존중하면서 현장보존할 것은 현장보존하고, 이전할 것은 이전하고, 기록만 남길 것은 기록만 남기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문화재 보호를 무시하는 것도, 유물이 소량이라도 발견되면 무조건 보존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대형 개발사업을 계획할 때부터 문화재 조사계획을 포함하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4대강 개발 예정지에 대한 문화재 조사 사업에 대해서도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기 전에 지표조사 등을 철저히 해 문화재가 있다고 예상되는 지역은 원형보존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

이 청장은 "공원이나 녹지공간 등을 조성한다면 매장 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다"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가 흐르는 4대 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나오는 `지표조사 축소` 논란에 대해선 "유적을 찾는 것이 우리 사업인데 축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지금처럼 투명한 사회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 He is…최초로 문화유산계 양대기관 수장 모두 역임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고고학자로 전공은 한반도 청동기 문화다. 한국 고대사의 태두로 꼽히는 이병도 박사(1896~1989)의 손자이면서 이장무 서울대 총장의 친동생이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근무를 시작으로 평생을 `박물관 맨`으로 살았다.

고고학자로서 전국의 발굴 현장을 누볐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과 국립광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그래서인지 이 청장의 분위기는 관료라기보다는 학자에 더 가깝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처럼 실제로도 조용하고 꼼꼼한 성격의 선비풍 학자라는 평가다. 웬만해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고, 신중하고 겸손해서 적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업무 스타일은 꽤 깐깐한 것으로 유명하다. 박물관장 재직 당시 꼼꼼한 업무 스타일로 정평이 났고, 때론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소신도 강하다. 사안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 때문에 위아래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대외적으로도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다고 문화재청 직원들은 말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용산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면서 관리자로서의 능력도 검증받았다. 2003년 4월 개방직으로 전환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첫 수장이 된 이래 2006년 8월까지 첫 차관급 관장으로서 박물관 이전을 지휘했다. 또 `문화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박물관대회 2004`를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유치해 한국 박물관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 만난 사람 = 윤구현 문화부장

[정리 = 손동우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