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생만 하다 가면 너무나 억울하다. 내가 돌아다녀 본 우리나라 전통 고택 가운데 한국 상류층의 전통 풍류를 느끼기에 가장 좋은 집은 강릉 선교장(船橋莊)이다. 우선 여름에는 꽃밭에서 놀아야 한다. 꽃밭 중에서 제일 꽃밭은 연꽃 밭이다. 이 집의 정자인 활래정(活來亭)은 홍련(紅蓮) 밭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한여름 밤에 정자 마루에 누워있다 보면 연향이 코로도 스며들고, 피부로도 스며들고, 머리속 핏줄에까지 스며든다. 연향은 아로마테라피 효과가 있다.

그다음에는 '연잎황토구이통닭'이 있다. 닭을 연잎으로 싼 다음에 황토를 발라, 장작불에다 몇 시간 굽는다. 닭의 기름기는 빠지고 연잎의 향이 닭고기에 스며들게 된다. 선교장 며느리인 홍주연(58)씨에 의하면 이게 여름 보양식이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경포대 호수까지도 선교장의 소유였다. 그 증거가 경포대 호숫가의 홍장암 바위에 있는데 여기에는 '이가원주 이근우(李家園主 李根宇)'라고 새겨져 있다. 이근우는 현재 후손의 고조부에 해당한다.

선교장을 방문한 풍류객들은 경포대에 배를 띄우고 달을 감상하였다. 달은 하늘에도 있었지만, 경포대 호숫가에도 있고, 술잔에도 있고, 임의 눈동자에도 있었다. 봄가을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시인 묵객들이 선교장에 짐을 풀고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유람하였다. 관동팔경의 베이스캠프는 선교장이었던 것이다.

1800년대 초반 전성기 시절에 이 집은 1년에 3만석을 수확하는 조선 재벌집안의 집이었다. 하인만 해도 100명을 넘었다. 각각 천석씩을 저장하는 쌀 창고만 해도 주문진에 북창(北倉)이 있었고, 동해시에는 남창(南倉), 선교장에 본창(本倉)이 있을 정도였다. 이 집의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과 활래정을 건축한 대지주 이후(李�M·1773~1832)는 후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재물관(財物觀)을 가르쳤다. '재산을 일으키는 데 있어 올바른 도리에 따르면 일어나고 도리에 거스르면 망한다. 사람이 돈을 나누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나눌 것이다. 하늘이 나눈다면 먼저 화를 내릴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나누지 않으면 하늘이 나누어 버린다는 가르침이었다. 동해안의 실질적인 영주이자 3만석 대지주였던 선교장의 처신이 여기에 담겨 있다.

 

 

원본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8/15/2010081500985.html